넷플릭스가 '무제한 휴가 정책'을 채택한 이유

 

지금 대부분의 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휴가 정책은 산업사회 때 시작된 것으로, 그동안 별다른 변화 없이 지속되어왔다. 즉, 교대근무가 이뤄져야 했던 공장에서 탄생한 제도라는 뜻이다. 이런 제도를 업종을 불문하고 지금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넷플릭스의 휴가 정책 폐기 선언"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Netflix)는 2002년에 상장을 하면서 휴가 정책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 상장 전 이 회사의 휴가 정책은 대다수 회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직원들은 매년 정해진 휴가 일수를 받았으며, 사용하지 않고 남은 일수는 연말에 돈으로 보상받거나 이월되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없어졌다.

 

넷플릭스의 직원들은 10일간의 정기휴가와 10일간의 월차휴가, 그리고 며칠간의 병가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사용한 휴가 내용을 자율적으로 기록하여 언제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상사에게 알렸다.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는 자유와 책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장이 되자 이 부분이 규제 법규와 충돌하게 된 것이다.

 

충돌은 회사의 감사인들로부터 불거졌다. 그들은 상장기업에 적용되는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에 따라 넷플릭스도 직원들의 휴가 일수를 기록할 의무가 있으며, 따라서 자율시행 시스템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규제 당국 또한 법규에 맞는 휴가 시스템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대해 창립자이자 CEO인 헤이스팅스(Wilmot Reed Hastings Jr.)의 생각은 달랐다. '회사가 꼭 휴가를 주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니 넷플릭스의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에는 급여를 받는 정직원의 경우 휴가를 얼마나 받는지 또는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관한 법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2004년 헤이스팅스는 회사의 휴가 시스템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도록 휴가 정책이라는 걸 아예 없애버렸다.

 

이제 넷플릭스에는 딱히 정해진 휴가 정책이 없다직원들은 자신이 필요한 만큼 휴가를 쓸 수 있으며다만 언제 휴가를 갈 것인지를 상사에게 알리기만 하면 된다물론 매년 며칠이나 휴가를 쓰는지 계산하지도 않는다이어 헤이스팅스는 회사의 기업문화와 휴가 정책에 대해 공식 성명을 발표했는데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구성원들이 며칠을 일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뤄내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우리에게 9시부터 5시까지의 근무시간 규정이 없는 것처럼휴가 규정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에 휴가 정책은 없지만 책임 있게 휴가를 쓰는 방법에 대한 약간의 지침은 있다. 예를 들어 재무부서 직원들에게는 분기 결산 시기에는 자리를 비우지 말도록 권장한다. 그때는 팀 전체가 바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30일 이상 연속으로 휴가를 쓰고자 한다면 먼저 인사부서와 협의해야 한다. 아울러 고위 경영진에게는 될 수 있는 대로 휴가를 오래 쓰고 이를 회사 전체에 알리도록 권장한다.

 

더 나아가 2015년 넷플릭스는 이제 곧 엄마나 아빠가 되는 직원들은 무제한적인 출산휴가의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정책에 따르면 출산을 맞은 직원들은 단순한 출산휴가 이외에도 필요에 따라 파트타임과 풀타임을 오가거나 나중에 재차 휴가를 가질 수도 있다. 이 기간에 직원들은 정상적으로 급여를 받게 되며, 따라서 실업수당이나 정부 지원을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

 

 

무제한 휴가 정책의 핵심은 '신뢰'

휴가 무정책주의를 옹호하는 경영자들이 한목소리로 꼽는 하나의 단어는 '신뢰'이러한 정책은 경영자들이 직원들을 더 많이 신뢰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직원들 역시 긍정적으로 화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말이다하지만 신뢰라는 개념이야말로 휴가 무정책주의를 도입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헷갈리게 하는 요인이다. 신뢰를 계량화하거나 분석할 수 있어야 말이다.

 

물론 우리는 신뢰를 수학적으로 계량하는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다. 신뢰는 따지고 보면 화학물질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화학물질이 바로 옥시토신(Oxytocin)이다. 옥시토신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뇌가 가진 집중력과 기억력, 주변 환경의 오류 인지에도 영향을 미침으로써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이유들을 근거로 많은 과학자가 옥시토신은 두려움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개인 간의 신뢰를 북돋워 준다는 가설을 세웠다.

 

로마린다대학교의 의과대학 겸임 교수이자 클레어몬트대학원 교수이며 동 대학 신경경제학연구센터 소장이기도 한 폴 잭(Paul Zac)은 신뢰를 구축하는 데 옥시토신이 하는 작용, 그리고 일단 신뢰가 구축된 상태에서 옥시토신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연구 방법인 '투자 게임(investment game)'을 약간 변형하여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참가자 혈액 속의 옥시토신 수치와 투자 게임에서 내린 그들의 결정 간에 상관관계가 발견됐고, '옥시토신은 신뢰받는다고 느낄 때 증가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 역시 높여준다'고 결론을 내렸다.

 

잭은 더 많은 회사가 신뢰에 기반을 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는 '정책들이 옥시토신 수치를 높인다면 직원들의 신뢰와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그처럼 신뢰에 기반을 둔 정책 중 하나가 휴가 무정책주의라고 강조한다휴가 정책을 경제적 교환의 일부로 보기보다 오히려 간소화하여 신뢰의 문제로 바꿈으로써 헤이스팅스와 같은 경영자들이 직원들에게 신뢰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것이다거기에 직원들이 똑같이 화답한 것이고 말이다.

 

*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에서 펴낸 데이비드 버커스(David Burkus)의 《경영의 이동》의 내용을 요약 재정리했습니다. 이에 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책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글쓴이 : 곽숙철

LG그룹에서 30여 년 근무하면서 LG그룹 혁신학교장, LG전자 창조혁신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퇴직 후 2007년부터 CnE 혁신연구소 대표로 재직하고 있으며, 경영 혁신 전반에 걸친 연구와 강의,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펌핑 크리에이티브], [경영 2.0 이야기에서 답을 찾다], [Hello! 멘토], [그레이트 피플]이 있다

원글 : http://ksc12545.blog.me/220988338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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